실리콘밸리가 일하는 방법

Sisun Lee
8 min readOct 20, 2020

“실리콘밸리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창업을 장려하는 문화라면서요?”

이 질문은 모어랩스에 대한 인터뷰 중 주어진 질문이였어요. 기사에 적힌 답변은 짧았지만 제 경험을 바탕으로 실리콘 밸리의 “문화”와 분위기를 정리해보았습니다.

A. 인적 자원

실리콘밸리는 인적 자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막 졸업한 주니어의 연봉이 2억이 넘는 것은 기본이고, 일을 잘 하면 회사에서 주식형 보너스를 줘서 계속 회사에 머물 인센티브를 주죠. 예를 들어 페이스북 같은 경우 (레벨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1년 정도 일한 학부 졸업생에게 주식보상을 6억 정도(4년 베스팅) 주는 정도는 아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몇 년만 일하면 매년 회사에서 받는 돈이 10억이 넘어갈 수 있죠. 실리콘밸리에는 ‘10X 엔지니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한 명의 일 잘하는 엔지니어가 평범한 엔지니어 10 명보다 낫다는 뜻인데요, 거기에 맞춰서 보상의 차이도 어마어마합니다. 회사의 HR전략이 가장 똑똑한 실력자를 확보하는 것에 집중되어있고, 아무리 큰 인건비를 지출하더라도 유능한 인재들은 그것의 몇백배 이상으로 회사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최소한 (주니어 엔지니어 기준) 연봉 1억 + 스톡옵션 정도는 제시할 수 있어야 현실적으로 인재를 채용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좋은 인재의 확보에 있다는 것이 이곳의 상식입니다.

B. 주식의 보상

인건비가 다른 지역보다 몇 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급여 보상에서 현금보다 주식의 비중이 훨씬 큰 편입니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직원으로서 현금성 급여 자체는 어느정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금성 급여가 무의미할 정도로 회사의 지분을 받기 때문에 모두가 회사의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C. 능력주의

경력은 숫자에 불과하고 결국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중요시됩니다. ‘천천히 채용하고 빨리 해고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뽑을 때는 신중하게 뽑고 일을 못하면 과감하게 빨리 해고한다는 말이죠.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이 페이스북인데요, 거기에서 ‘순환 프로덕트 매니저 프로그램(RPM, Rotational Product Management)’이라는 프로그램에 들어갔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주어진 업무가 전세계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을 현지의 통신사들과의 제휴 등을 통해 페이스북의 사용자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막 졸업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회사에서 중요한 미션을 받아 몇 달 동안 케냐, 인도,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팀에 들어가자마자 15,000달러짜리 비행기 표를 구매해서 바로 나이로비, 케냐로 날아간 기억이 나요.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 기다리지 말고 오늘 당장 가라고 당시 제 상사가 말하더군요.

실리콘밸리는 나이와 경력보다는 실력과 잠재력을 중요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곳입니다. 대신 그만큼 해고도 엄격해서 일을 못하면 금방 해고되죠. 주니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잡일’을 시키는 일도 없습니다.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임팩트 있는 일을 찾아서 능동적으로 일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러한 문화를 통해 가장 우수한 인재를 찾아내고 보상하죠. 페이스북에서 첫 매니저가 저에게 한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매니저의 역할은 잠재력이 가장 높은 소수의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하고 키우는것이지 모든 사람을 회사의 인재로 만들려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요.

D. 임팩트 우선

위에서 결정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실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각자 ‘임팩트 우선’의 원칙에 따라 알아서 일을 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면 높은 직위의 상사가 개발팀에게 어떤 일을 시킨다면, 그 팀에서는 왜 그 일이 중요한지, 다른 일과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물어본 뒤 최종적으로 그 일을 언제 어떻게 할지(혹은 할지말지) 알아서 판단할 확률이 높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크지만 그만한 권한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그냥 시킬 수는 없고, 실무자들을 잘 설득해야 합니다. 모두가 독립적인 사고를 가지고 일하는 구조입니다.

E. 프로덕트 매니지먼트에 성숙함

특히 컨슈머 프로덕트 관점에서 볼 때, 실리콘밸리에는 프로덕트 매니지먼트의 방법이 많이 성숙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프로덕트를 만들 때 과학적인 프레임워크와 데이터를 활용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설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소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등의 일을 프로덕트 매니저가 책임지게 되는데, 이 분야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성숙해져있고 압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F. 다양한 문화와 특징

실리콘밸리라고 모든 회사가 똑같이 일하지는 않습니다. 성공한 창업자나 회사마다 다양한 문화와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과 테슬라를 비교하면, 페이스북은 굉장히 ‘바텀업(bottoms up)’ 문화입니다.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는 팀원들 사이에서 많이 나오고 마크 주커버그는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만 리뷰하는 편입니다. 마크가 리뷰를 하지 않아도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제품들이 출시됩니다. 반면 테슬라는 비교적 ‘탑다운(top down)’ 문화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지시한 대로 움직이는 조직이고 거의 모든 제품 출시가 그의 리뷰를 통과해야 합니다.

G. 창업의 최고의 환경

대기업도 많지만 회사를 나와서 창업을 시도하는 분들도 아주 많습니다. 정말 창업하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자본 — VC와 엔젤투자자들의 자금 흐름을 보면, 벤처투자 시장에서 자본의 공급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투자하려는 돈은 많은데 투자할 곳이 없는게 더 큰 문제입니다. 많은 VC들이 5~6억원 미만의 작은 투자는 별도의 투자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시 수표를 써서 주는 경우도 흔할 정도입니다. 창업자들이 투자유치에 덜 신경쓰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2. Talent — 기술기반의 제품을 만들고자 하면 주변에 좋은 인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3. Community — 취업을 못해서 억지로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급여를 충분히 많이 주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창업을 시작하는 뛰어난 인재입니다. 이분들이 만들어나가는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서로 도와주고, 비슷한 고민들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엔젤투자를 하기도 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4. Fail Upwards — 창업을 했다가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을 인정해주고 스스로 자부심도 높습니다. 물론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실패했는지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실패 자체에 대한 창피함이나 부담감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회사를 나와서 창업을 했다가 실패한 뒤 그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더 높은 자리로 다시 들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창업 경험을 높게 평가합니다.

H. 유니콘

초기 투자자들은 투자한 기업들 중 결과적으로 누가 잘될지 몰라요.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실패하더라도 그 중 한 회사가 100배 이상 커짐으로써 전체 투자금 이상의 수익을 안겨주게 되죠. 그 한 회사에 대한 기준선이 ‘유니콘’이에요. 창업자들도 대부분 아주 멀리 보면서 대기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일하고, 자신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한 것 같아요. 물론 모두가 이렇게 일을 하지는 않아요. 유니콘보다 작은 규모로 적당히 이익을 내면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창업자와 투자자들은 물론 직원들까지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중화 되어있는 문화에요. 본인이 가지고있는 야망과 꿈을 겸손함없이 이야가하고 믿습니다.

“한편으로 한국의 젊은인들이 ‘실리콘밸리니까 가능했겠지’ 이렇게 낙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주변 환경이 사람의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창업을 하고싶은 미국 청년들이 실리콘밸리로 모이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창업을 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좋은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나중에 다른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면 오히려 한국에 와서 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성공의 기본은 ‘통념과 반대되는 진실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다 아는 것, 다 열심히 하는 일을 바탕으로 경쟁하면 이길 확률이 너무 떨어져요. 피터 틸이 한 ‘Competition is for losers’라는 말처럼요. 남들이 모르는 진실, 내가 먼저 차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 이런 포인트를 찾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 창업을 하면 이런 기회들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직까지 한국은 너무나 좋은 인재들이 능력에 비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기회가 적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들을 좋은 조건으로 모셔와서 회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보여요.

Thank you Kevin Sohn for the trans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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